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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네데타> - 야외 상영으로 완성되는 영화가 있다.
    씨네리와인드 대학생 기자단 6기 2022. 9. 19. 17:34

    씨네리와인드 대학생 기자단 6기 첫 번째 글입니다.


    Review | ‘베네데타’(Benedetta, 2021)

     

    <베네데타> 포스터

    부산국제영화제의 광기 – ‘R18 레즈비언 영화야외상영하기

    <베네데타>가 야외에서 상영된다는 소식이 퍼지자 부산국제영화제에 있던 관객들의 반응은 모두 한 가지였다. ‘그걸 어떻게 야외에서 상영하지?’ 그 이유야 물론 영화의 테마가 청소년 관람불가 레즈비언 영화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화를 좀 본 사람들이라면 폴 버호벤이라는 사람이 <원초적 본능>을 만든 감독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이 느꼈을 당혹감이 채 상상도 되지 않는다. 과연 얼마나 엄청난 장면이 있을 것인가, 궁금해하는 관객들 앞에 <베네데타>가 상영됐다.

     

    로맨스와 권력 쟁탈전의 조화 

    작품 자체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무난하게 재미있는 영화다. 러닝타임이 짧지는 않아도, 지나치게 길지도 않고, 관전 포인트가 여럿 있다. 전 연령이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어도 많은 사람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다. 소수 취향이라고 할 수 있는 청소년 관람불가 퀴어 영화가 어떻게 그런 영화가 될 수 있는지를 몇몇 관점에서 설명해보려 한다.

     

    영화는 베네데타와 바르톨로메아가 연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전반부로, 베네데타가 수녀원장이 된 뒤 교황청의 심판을 받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후반부로 나눈다. 이 두 부분의 분위기가 아주 다른데, 첫 부분에서는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힘을 쏟기보다는 개인 베네데타의 관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영화 속 현실과 모호하게 섞어 이야기한다.

    이는 베네데타가 몽상을 통해 예수를 만나는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베네데타의 몽상 속 예수의 모습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거룩하신 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이후에 그는 백일몽을 통해 양들에 둘러싸인 예수를 본 직후에 바깥세상에서 양과 함께 갑작스럽게 몰아치는 바르톨로메아를 보게 되는데, 이 순간에 (아직 베네데타는 자각하지 못하더라도) 관객들은 베네데타가 찾던 운명적인 존재가 바로 자그마한 양치기 소녀임을 깨닫는다. 관객이 먼저 주인공이 그토록 찾던 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베네데타가 권력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영화는 베네데타를 관찰하기만 한다. 관객들은 이제 그의 생각을 알아낼 수 없다. 그와 동시에 수녀원과 교황청을 둘러싼 정치적 싸움이 시작된다. <베네데타>의 스토리에서 이 부분이 영화를 영화 자체로 흥미롭게 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 역사상 혼란스러웠던 종교 개혁 시기와 맞물려, 베네데타의 원죄에 대한 심판은 중요한 정치적 쟁점이 된다. 이 과정에서 수녀들 간의 팽팽한 신경전을 보는 것, 그들이 택하는 전략을 보는 것 역시 관전 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관객들은 베네데타 개인과는 멀어지고, 교회 세계 전체를 바라보기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부터 비로소 베네데타의 원죄를 둘러싼 논쟁이 얼마나 정치적이고 차별적인지 파악하게 된다. 이것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후반부에 바르톨로메아가 베네데타가 사실은 도자 조각을 사용해 스스로 상처 냈던 것임을 발견하는 그 순간까지, 아니 그 이후의 난장판에 이르기까지 관객들은 베네데타의 생각과 계획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각자의 기준대로 교회의 권력 싸움을 관전하게 된다.

     

    <베네데타> - 상영으로 완성된 영화.

    <베네데타>가 굳이 야외극장에서 상영되었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못마땅한 일일 수도 있다. 사실 불편할 지점이 많은 영화이기도 하다. 여전히 금기나 음지의 영역에 있는 퀴어 이야기, 여성의 성적 행위 혹은 신체를 클로즈업한 장면이 집요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네데타>는 오히려 야외에서 상영했기에 더 의미가 있는 작품이 되었다. 상영과 관람이라는 집단적 행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관객이 영화를 관람한다는 것은 어두운 공간에서 각자의 자아와 신분을 잊고 영화 속 세계에만 몰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두운 극장에서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관객의 존재는 사라진다. 만약 <베네데타>가 일반 극장에서 개봉한다면, 관객들은 마음 편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보기 위해 극장 속으로 숨어들 것이다. 그것이 여성이 되었든 퀴어가 되었든, 아니면 여성의 신체가 되었든 간에 말이다. 하지만 야외극장은 다르다. 아무리 모든 불을 끈다고 해도, 도심 속 야외극장은 조금만 노력하면 다른 관객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밝다. 개방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극장 외부로까지 소리가 새어 나가는 곳에서 <베네데타>를 관람한다는 것은 내가 이런 영화를 본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한 야외 상영의 특성이 <베네데타>를 완성했다. 여성 퀴어를 다룬 영화, 심지어는 교회와 베네데타의 싸움에서 베네데타의 손을 들어주는 영화를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공간에서 상영했기 때문이다. 러닝타임 중반에 여성 간의 베드신이 나오자 자리를 떠나는 관객도 있었고, 쩌렁쩌렁 울리는 사운드를 들으며 상영관 밖에서 키득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리를 끝까지 지켰지만, 상영이 끝나고 나갈 때 표정이 좋지 않았던 관객도 있는가 하면 어느 누구보다도 크게 박수치는 관객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베네데타>이 지향하는 메시지를 확실히 한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야외 상영이었다는 점이 큰 의미로 다가온다. 그렇기 때문에 베네데타는 재미있는 영화. 요즘 같은 시대에 의미가 희미해지고 있는 상영행위에 대해 고찰할 거리를 남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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