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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데타: '페미니스트 영화? 성공적이라고 생각'영화와 글 2021. 11. 1. 22:45
http://www.cine-rewind.com/sub_read.html?uid=5277#
≪씨네리와인드≫ BIFF|야외 상영으로 완성되는 영화가 있다
[씨네리와인드|류나윤 리뷰어] 부산국제영화제의 광기 – ‘R18 레즈비언 영화’ 야외상영하기<베네데타>가 야외에서 상영된다는 소식이 퍼지자
www.cine-rewind.com
영화잡지 씨네리와인드에 게시한 글에 덧붙여서 쓰는 글.
제목은 실제로 영화 크루가 참여한 부산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서 배우 루이스 샤빌롯이 질문에 대답한 내용이다. 이 영화는 '페미니스트적으로 성공적인 영화'다.
폴 버호벤은 <원초적 본능>을 연출한 감독이다. <원초적 본능>은 참 애매한 영화다. 샤론 스톤의 유명한 노출 장면과 '실제 정사' (왜 그렇게 관객들은 '실제' 정사에 열광하는지 모르겠다.) 장면 때문에 남성 관객들이 좋아할 법한 영화라고 생각하게 되다가도, 막상 그 내용은 남자들을 헷갈리게 하고, 결국엔 그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여성 용의자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내가 폴 버호벤의 모든 영화를 본 건 아니지만, 그의 영화는 늘 이렇게 두 가지 정체성이 겹치는 것 같았다. 남성적 시선, 그리고 주체적인 여성 말이다.
이번 <베네데타>에서도 그런 양가적 성격은 마찬가지인데, 이번에는 여성 퀴어라는 소수자 정체성까지 더해져 더욱 복잡한 감상을 만들어낸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이 모든 정체성을 고루 수용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번 영화는 대체로 세 가지 관객의 반응으로 나뉜 것 같다. 1. 남성적 시선에 이입하는 관객, 2. 페미니스트 관객, 3. 여성 퀴어 관객. <베네데타>에 대한 영화 커뮤니티의 반응을 모니터링했을 때 대체로 1번과 3번 관객은 영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2번 관객이 영화를 비판적으로 보는 편이었다고 추정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의외로 페미니즘적인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다. 오히려 그러는 것이 더 쉬울 정도인 영화다. 그래서 나는 2번 관객들이 <베네데타>를 조금 더 쉽게 용서하도록 '면벌부'를 주고 싶다. 이 면벌부의 근거는 대충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다음과 같다. '남성적 시선이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두 주인공에게 남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기 때문에 여성주의적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 '남성적 시선'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이 영화는 분명히 과거 수녀원에 있었던 레즈비언 수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고, 노이즈 마케팅을 원했던 것인지는 몰라도, 관객들이 상당히 자극적인 영상을 기대하도록 홍보했다. 베드신 역시 남성적 시선, 혹은 전 원장수녀의 '훔쳐보는' 시선에 의존해 보이며, 처음 성적인 쾌락을 경험하는 베네데타의 모습을 미화하여 그렸다.
하지만 영화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베네데타는 물론 바르톨로메아의 눈에도 남성 따위는 들어오지 않는다. 둘은 교황청의 고문과 협박에 잠시 서로를 배신하기도 하지만 결국엔 서로에게로 돌아오며, 오로지 둘만의 세계에 빠져든다. 두 주인공이 베드신에서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묘하게 이성애적 성관계를 조롱하는 듯한 대사가 나오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여성의 몸을 탐닉하는 카메라에 걱정어린 비판을 하는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미리 약속하지 않은 베드신을 촬영 현장에서 무리하게 강행하는 악습이 한국 영상계엔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네데타>에서만큼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감독이 주연 배우 두 명을 만난 첫날부터 베드신의 존재와 촬영 방식에 대해 자세히 안내했기 때문이다. 고로 이것은 합의 하에 찍은 깨끗한 필름이다.
여기에 두 주인공의 사랑 외의 이야기, 즉 권력 싸움에 대한 내용까지 더하면 영화는 그럴듯한 '여성 서사'가 된다. 베네데타는 신화에서와 같은 통증을 느낀 뒤 페샤 지역의 가장 성스러운 인물로 거듭난다. 종교가 세상이었던 당시의 분위기를 고려하면, 베네데타는 페샤 지역을 다스리는 왕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 새로운 권력이 등장하면 기존의 권력의 도전을 꾸준히 받게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여성 인물들이 선택하는 전략을 지켜보는 것 역시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영화의 후반부는 베네데타와 바르톨로메아의 사랑 이야기보다도 이런 여성들 간의 정치적 싸움을 지켜보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더욱 재미있을 정도로 흥미로운 전략이 오고 간다. 여성인 자신의 힘이 모자라면 부패한 교황청의 권력을 끌어들이고, 교황이 쓸모없어지면 다시 그를 이용해 종교 권력 자체를 파멸에 이르게 한다.
이렇듯 여성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두뇌를 빠르게 회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 역시 <베네데타>를 여성주의적 작품으로 해석하게 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마지막은 베네데타가 끝내 사형당하지 않았고, 그는 죽는 날까지 바닥에서 식사를 하며 존엄을 지키지는 못해도 목숨을 부지한 채 수명을 끝까지 채우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그가 있었던 지역 페샤에서는 흑사병이 퍼지지 않았다는 내용을 말하는 엔딩 크레딧으로 끝내고 싶다.
영화는 베네데타의 이야기를 '레즈비언 수녀 스캔들'로 가볍게 그릴 수도 있었지만, 마지막에 베네데타의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그의 삶을 일종의 신화의 반열에 오르게 한다. 비록 일반 수녀보다도 못한 인생으로 돌아갔지만 끝까지 살아남았다는 베네데타의 삶을 종교와 대비되도록 강조했다는 점은 영화가 어떤 집단의 손을 잡고 있는지를 암시하는 듯하다. '완벽한 여성 서사'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여성 서사임을 부정할 수 있는 영화는 절대 아니다.
참고 기사 -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8251
폴 버호벤 감독의 '베네데타' 기자회견, 신성 모독이라고? 이건 실화다
사진제공 SHUTTERSTOCK <포스맨>(1983), <아그네스의 피>(1985), <원초적 본능>(1992), <쇼걸>(1995), <엘르>(2016) 등 폴 버호벤 감독의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단연 섹스, 폭력, 종교 그리고 스캔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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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베네데타> 스틸 컷. ⓒ부산국제영화제 '영화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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